한옥의 과학성을 논의하기 전에 과학을 먼저 정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과학은 과학적 사고에서 출발합니다 과학적 사고라는 것은 합리성을 기반으로 사물을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인류가 만들어 놓은 모든 문화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과학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도구도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도구를 가장 능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고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이고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가 쓰고 있는 도구 또는 확대하여 보면 집인 것입니다. 한옥으로 돌아가 보면 한옥에도 한옥 나름의 과학성이 여기저기 배어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옥의 과학성을 말하기 전에 우선 한옥에 대한 정의를 하여 보겠습니다. 이것이 한옥의 과학성을 밝혀내는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 나름대로 한옥을 정의하여보면 '한옥'이란 우리 나라의 자연환경과 생활 조건에 맞도록 적응되어온 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옥'은 우리 나라의 기후에 가장 적합하게 맞추어진 과학적인 집입니다. 각 나라에는 각각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발달한 집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막기후의 집은 흙으로 만들고, 벽이 매우 두꺼우며, 지붕은 평평하게 만들어지고, 창은 거의 없고, 모든 창은 집 가운데 마당(건축전문용어로는 중정이라고 표현함)으로 열려 있습니다. 또한 외벽의 색깔은 백색으로 칠합니다. 이러한 형태를 가지게 되는 것은 사막기후에 적응하기 위함입니다. 우선 벽이 두꺼운 것은 사막의 열기에서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소위 단열이라는 것을 하기 위함입니다. 지붕이 평평한 것은 비가 오지 않기 때문에 물을 흘러내리게 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평평한 집은 상대적으로 지붕이 경사진 집보다는 만들기 쉽습니다.
반대로 눈이나 비가 많은 지역의 지붕은 경사가 매우 급해 뾰족한 지붕의 형상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비가 스며들지 않고 바로 떨어지기 위함이고 또 눈이 지붕에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붕에 눈이 쌓이면 눈의 무게 때문에 집이 무너질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문이 중정으로 열려 있는 것은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늘진 곳으로부터 통풍을 하는 것이 더 시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벽을 백색으로 칠하는 것은 햇볕을 조금이라도 반사시켜 집을 시원하게 하려는 노력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각각의 환경에 과학적으로 적응하여 살려는 노력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한옥에서 그러한 노력이 없었겠습니까. 한옥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자들이 살던 기와집과 일반인이 살던 초가집만 있는 줄로 알고 있지만 강원도에 가보면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든 너와집, 굴피집 등이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집이 이렇게 다른 것은 벼농사를 하지 못하고 밭농사만 하기 때문에 초가의 지붕재료인 볏집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함경도의 집과 전라도의 집은 그 구조가 다릅니다. 이것은 함경도가 전라도 지역보다 추워 그 추위에 적응하기 위하여 집의 구조를 개선한 것입니다. 전라도지방의 방은 앞뒤로 통하도록 되어 있으나 함경도의 집은 모든 방이 붙어있고 부엌도 집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집을 이렇게 만든 것은 함경도 지방이 매우 춥기 때문에 외부의 면적을 줄여 열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지혜에서 나온 집 구조입니다. 이렇듯 우리 나라 안에서도 각각의 지방에 따라 집의 구조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진다는 점이 바로 한옥이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한옥의 과학성에 대하여 실제의 예 몇 가지를 이야기하여 보겠습니다. 우선 잘 알고 있는 온돌과 대청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나라는 여름과 겨울이 있는 나라입니다. 여름과 겨울은 근본적으로 생활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여름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필요하지만 겨울에는 그러한 것이 필요 없고 오히려 따뜻한 난방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완전히 상극의 생활입니다. 이러한 상극의 것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들은 집 구조를 잘 조정하여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상황에서도 편리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의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즉 여름의 생활을 위하여 대청을 만들었고 겨울의 생활을 위하여 온돌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온돌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구조이며 특히 대청과 온돌이 같이 있는 구조는 더더욱 다른 나라에는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한옥이 매우 독창적이며 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온돌의 구조를 보면 매우 과학적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기의 흐름을 잘 제어하여 연소가 잘되도록 되어 있고 또한 '개자리'라는 것을 만들어 불완전 연소된 그을음이 굴뚝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소된 연기가 굴뚝을 통과하게 되면 우리 몸에 해로운 성분이 거의 남지 않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지방에 따라서는 굴뚝을 낮게 만들어 빠져나간 연기들이 마당에 깔리도록 하여 살충제로 이용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청은 앞으로 넓게 열려 있고 뒤의 문은 그리 크지 않아 미세한 바람의 움직임에도 대청에는 늘 바람이 생기도록 하여 여름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과학시간에 배운 '베르누이의 정리'라는 유체역학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지붕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한옥의 지붕재료로 쓰이는 것은 기와와 초가입니다. 배수기능이 우수한 기와는 만들기가 힘들어 부자집에서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집은 볏집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이었습니다. 따라서 초가집에 대하여 우선 이야기할까 합니다. 초가집의 초가는 벼를 추수하고 남은 볏집으로 만듭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재활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재활용을 하지 않아 법으로 정해 재활용하도록 하지만 옛날에는 이렇게 솔선하여 재활용하였습니다.
초가는 볏집을 엮어 올립니다. 이렇게 올린 초가집은 보온성이 매우 우수합니다. 다른 어떤 재료보다 보온성이 우수하여 우리 나라와 같이 여름이 덥고 겨울이 추운 나라에서는 매우 적절한 재료입니다. 그리고 물이 스며들지 않고 흘러내리게 하는 효과도 탁월하여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 비를 막는 유용한 재료입니다. 초가집에서 비가 스며들지 않는 것은 컵에서 물을 조금씩 따라내기 위하여 컵에 젓가락이나 나무막대기를 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한 한옥의 지붕에서는 처마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유용하면서도 과학적인 기능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처마란 지붕이 벽 외측으로 돌출한 부분을 말합니다. 한옥에서는 이 처마를 적절히 내밀어 줌으로써 비와 햇볕에 대한 자연적인 조절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장마철은 비가 매우 많이 내립니다. 옛날 집의 벽은 대부분 흙으로 되어 있습니다. 흙은 단열효과가 매우 우수하여 더운 기운이나 찬 기운이 집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는 장점은 있으나 물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마철에 비가 들이치게 되면 벽이 손상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처마를 많이 내밀어 물이 벽에 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처마는 햇빛에 대한 계절적인 조절이 가능하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여줍니다. 즉 더운 여름에는 해가 높이 뜨기 때문에 처마가 많이 나오면 집안으로 해가 들지 않아 시원하게 되고 반대로 겨울에는 해가 낮게 뜨기 때문에 처마가 있어도 방안까지 해가 들어 따뜻하게 됩니다. 이렇게 햇빛을 조절하여 간접적인 냉난방효과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처마를 많이 내미는 형식의 집은 비가 많이 오거나 햇빛이 강한 지방에서는 흔히 쓰는 기법입니다.
다음은 목재의 사용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재를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우리가 나무로 어떠한 물건을 만들 때 톱, 대패, 망치 그리고 못을 사용하여 물건을 만들어 냅니다. 톱과 대패는 형태를 가공하는데 사용하고 망치와 못은 가공한 목재를 맞추어 형태를 만들 때 사용합니다. 한옥은 집을 만들 때 못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서양에서 목재로 집을 지을 때 망치를 사용하여 못을 박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한옥에서는 못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동양 삼국의 집이 대부분 그러합니다. 즉 우리의 집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못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집이 튼튼하게 서있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집이 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나무를 서로 짜나가는 것을 '맞춤'이라고 합니다. '맞춤'은 여러 종류가 있어 목재를 짜 맞추는 방식에 따라 각각의 방법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맞춤'이 이용되는 것을 보면 매우 과학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힘이 전달되는 상태에 맞추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크기나 '맞춤'의 선택을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매우 정교할 뿐만 아니라 과학적이어서 현대의 과학기술인 역학이라는 학문으로 풀어보아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수학, 구조역학 등의 학문을 통하여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합리적인 검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방의 구조에 대한 합리성과 과학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한옥의 방은 활용에 있어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양식의 집이 식당, 침실, 거실, 응접실 등으로 명확히 용도구분이 되어 있음에 비하여 한옥은 같은 장소를 여러 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옥에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안방이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식당으로, 텔리비젼을 보는 거실로, 손님이 오셨을 때는 응접실로, 잘 때는 침실로 이용되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용도의 쓰임새는 집의 규모를 적절하게 조정하여 너무 큰집이 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만일 각각의 용도에 맞게 모든 방을 집에 구비한다면 집은 매우 커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한옥의 방의 구조를 보면 방 하나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지만 작은 방을 여러 개 붙여 필요에 따라 좁게도 넓게도 쓸 수 있도록 하여 다양성과 효율성을 높여 놓았습니다. 이러한 점이 다른 나라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한옥만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효율적인 집이 되기 위하여서는 집의 구조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활방식, 사용하는 가구 등이 복합적으로 개선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한 때 서양에서는 한옥처럼 집이 다양하게 여러 기능으로 쓰이게 하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시도가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요사이는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가구 등이 우리의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앞서 말하였듯이 한옥에는 예전부터 이러한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양의 건축가들이 우리의 한옥을 보았으면 쉽게 그러한 노력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겠지요. 또한 집안에서의 높낮이를 보면 사람이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공간인 방은 높이가 사람의 키 보다 조금 높은 정도의 높이로 되어 있고, 주로 서거나 이동이 많은 대청은 사람 키의 한배 반에서 두 배 사이의 높이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사람의 심리적 안정감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앉아서 생활하는 공간이 너무 높게되면 사람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방의 내부와 밖의 천장높이를 달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좌식 생활을 하지 않고 입식생활을 하는 서양의 집이 높은 것은 우리의 대청이 높은 것처럼 그렇게 되어야 안정감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천장높이의 차이로 생기는 천장과 지붕사이의 공간은 '더그매'라는 창고로 만들어서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어 집안을 구석구석 알뜰하게 활용하려는 과학적인 정신이 배어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한옥에는 과학의 정신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방식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을 자기에 맞는 합리적인 구조로 변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집은 자연히 과학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변의 생활을 관찰하여 개선하고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것도 과학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의 한옥은 우리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집의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한옥도 무조건 우리에게 맞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이 예전과 같이 농업을 주업으로 하여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의 구조도 그에 맞추어 변화하여 가야합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말과 마차를 타고 다니던 것이 지금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때문에 그러한 변화에 따라 마굿간이 차고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 이래로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생활습관에서 본다면 한옥은 과학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한옥의 과학성에 대하여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환경친화라는 관점 때문입니다. 한옥은 자연에 대하여 순응하고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연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집입니다. 따라서 에너지를 조금 소비하는 구조로 되어있고, 앞에서 말하였듯이 주변의 재료를 재활용하도록 되어 있고, 천연재료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오염의 정도로 미미하도록 만들어진 집입니다. 이러한 점이 우리 한옥이 현재의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우리에게 재활용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간 자연환경보호에 그만큼 무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근대에 와서 과학문명이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우리들은 너무도 자연을 훼손하며 살아왔고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생활에 익숙하여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생활이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결국은 인류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의 태도는 우리의 집에서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간의 서양에서 들어온 우리의 집은 매우 친환경적이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을 우리는 반성하고 앞서 말한 한옥의 자연친화적인 과학성을 배워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연에 다가가려는 한옥의 친환경적 과학성을 배워 오늘에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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