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학부모의 화두는 자녀 교육입니다. 자녀가 좋은 학교에 진학, 졸업하고 빼어난 인재가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 부모로서는 그보다 더 큰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연년생 한국인 남매가 미국 하버드 대학에 4년 장학생(등록금 · 기숙사비 등 모든 학비 면제)으로 입학하여 토론토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사회에서 우리의 한국 자녀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도 아닌 남매가, 그냥도 아닌 4년 장학생으로, 다른 대학도 아닌 하바드에 입학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당분간은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작년 4월 아들 현진 군의 하버드 장학생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 아버지 배철원씨가 제게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를 한국의 언론을 통해 소개하려 했으나, 이역만리의 일이어서 그런지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올해에는 딸 소연 양이 오빠의 뒤를 그대로 따라갔습니다. 다소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배철원 한은정 씨 부부가 남매 교육을 어떻게 시켰나 하는 것을, 자녀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분들께서 보시라고 배철원씨의 편지를 포스팅합니다. 특히 사교육 부분과 사회봉사 등 과외 활동을 어떻게 하였는지 눈여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편지는 지난해에 작성되어 아들 현진 군 관련 내용뿐이지만, 딸 소연 양 또한 똑같은 길을 밟았으니 두 아이에 관한 내용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딸 소연 양은 SAT 2400점 만점에 2350점을 얻었고, 병원과 복지시설에서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다고 합니다. 한국어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에 능통하고, 지금은 중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아버지 배철원씨는 10년 전에 토론토로 이민을 와서, 지금은 컴퓨터 부품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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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라는 길고도 짧은 마라톤 시합이 이제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과 겨루어야 하기 때문에
진짜 마라톤 경주는 지금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MIT와 Johns Hopkins의 합격자 발표가 난 후,
특히 MIT 대학 발표 후 너무나 기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하버드· 프린스턴·코넬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연속으로 나오니 그 기쁨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더구나 모든 대학에서 아이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으니
오늘은 제 생애 최고의 날인 듯 싶습니다.
아들이 가고 싶어하는 미국 최고 5개 명문 대학인
HYPSM(Harvard Yale Princeton Stanford MIT)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운도 따라야 하지만 최소 5년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을 단 2년 만에 이루었으니 거의 기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올해는 경쟁률이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여
우수한 학생들이 줄줄이 떨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합격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버드의 경우 2만7천4백62명의 지원자 중 1천9백48명이 합격해 작년에
비해 1.9%가 떨어진 7.1%의 합격률을 기록했습니다(Princeton 9.25%, MIT 11.6%,
미국 학생이 아닌 국제 학생의 경우 MIT 3.9%).
10학년이 되는 시점에 매일 빈둥거리는 아이의 재능이 아까워서 시작한 도전이었습니다.
아이 또한 경쟁이 치열한 명문 사립고교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공부에서는
목표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막상 도전을 하기는 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몇 군데 학원에도 가보고 상담도 해보았으나 별로 만족스럽지 못습니다.
결국 우리 스스로 해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우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입시 관련 서적을 10여 권 주문했습니다.
바짝 긴장한 채로 열심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매일 자료를 뒤지고, 읽은 책을 또 읽으면서
밑줄을 치고 또 쳤습니다.
시작 초반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해 왠만큼 준비하면 미국 명문대는 어렵지 않게
입학하리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입시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아이의 지금 실력으로는
최고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들여서 가는 미국 대학인데 토론토 대학보다 못한 곳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최고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일반 학생에 비해 3년 정도의
선행 학습을 해야 하는데 시간적으로 너무 부족하다 보니 1년 정도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고 후회 막심이었습니다.
아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듯 대외적으로 큰 상을 타지 못하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나와 협의를 거친 후 아이는 국제올림피아드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막상 허락하기는 했지만 내심 몹시 불안했습니다.
국제 올림피아드도 남들은 몇년간에 걸쳐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겨우 10개월 만에, 더구나 전문 입시학원의 도움도 없이 혼자 독학으로 한다고 하니,
또한 모든 학교 공부 및 기타 활동을 거의 제껴두고 오직 올림피아드에만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다, 잘못했다가는
상도 못받고 나머지도 망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대외 경시대회, 운동경기, AP, SAT Subject 등 모든 시험이
올림피아드 1차, 2차, 3차 시합과 겹쳐 있어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굳은 결심과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학교 성적을 쑥쑥 올렸습니다.
각종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학교측의 허가로
11학년(한국의 고2) 때는 토론토 대학에서 대학교 1~2학년 화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올림피아드 준비를 했습니다.
토론토 대학에서 대학생 형들과 함께 강의를 듣던 중 교수님으로부터
"네가 강의를 하면 어떠냐"는 말을 들을 만큼 인정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말없이 공부만 하던 우리 아들 녀석이 한국 학생인 줄 모르고
한국인 대학생들은 "저 녀석 천재야"라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모두 기분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작은 아인슈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몇년에 한번 나올 정도의 비상한 천재는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일반 아이들 중에서는 뛰어난 편에 속했습니다.
MIT 대학의 웹사이트에서 무료 공개강좌도 듣고, 필요한 대학교재를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인터넷으로 각 국가의 올림피아드 문제를 프린트하여
홀로 공부도 하였습니다.
어느날은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하루 종일 끙끙거렸으나
한 문제의 4분의 1조차 해결하지 못해 속상해 하곤 했습니다.
독학 하느라 힘은 많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 실력 또한 많이 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남들로부터의 주입식이 아니라
혼자 끙끙거리며 창의적으로 생각하면서 공부한 데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1차와 2차 예선전을 거쳐 캐나다 대표 4명을 선발하기 위한 네셔널 올림피아드에
각 주의 대표 14명이 참가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아이는 다행히도 2등을 차지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서 열린 제39차 국제 올림파이드 화학 경시대회에는
각국의 과학 영재 260명이 나라를 대표해 참가해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여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아들 녀석이 더욱 대견하고 고마운 것은
올림피아드 준비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친구들끼리 서로 격려하도록 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함께 공부한 친구 3명도 내셔널 올림피아드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리더십과 강한 우정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은 1등을 하기 위해 남을 배려하기는커녕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이 일반화한
풍토인데 거기에 물들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온타리오 사이언스 센터에서의 봉사활동, 토론토시에서 주최하는 여름캠프 봉사활동,
서니브룩 병원 암클리닉 봉사활동, 스탠포드 대학의 Bio-Science summer program,
미국 Clark University가 전세계에서 20명을 뽑아 다섯분의
사이언스 교수님이 지도하는 의대 관련 무료 교육, 노벨상을 배출한
이스라엘 공대의 교수님 밑에서의 Bio-Technology 관련 리서치 프로그램 전액 장학생,
대학원생까지 참여하는 미국 환경오염 관련 국제 에세이 대회에서의 1등(US$2,000),
토론토 지역 life science essay 대회에서의 2년 연속 1등 등
아이는 고교시절에 수많은 대회와 프로그램에서 수상하고, 공부하고,
또 사회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북미 지역의 가장 큰 수학 경시대회이며 국제 올림피아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기 위한 미국 선발팀을 뽑는 1차 시험 AMC에서는
캐나다에서 2위, 전체 약 8만명의 학생 중 16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약 10년간 연주한 바이올린으로 성당과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고
학교 대표로 토론토시 대회에 투포환 선수로도 출전했습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여 Fitness Club을 만들어 학교 친구들을 지도하고,
온라인 주식투자 클럽인 Investment Club과 Pocker Club을 창설하여
비즈니스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바쁜 와중에도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Math, Physics, Chemistry 등의 과목을 가르치는 튜터링 봉사도 했습니다.
또한 앞으로 필요할지도 모를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part time 아르바이트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몇년 전에는 아이 엄마가 운영하던 샌드위치 가게에 주말마다 나와 일을 하며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국제 올림피아드 준비팀의 캡틴으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또한 본인도 2년 연속 금메달의 영광을 위해 토론토 대학 도서관에서
여념이 없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특히 보기 좋았습니다. 선생님들로부터 노력형이며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부모로서 기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재교육을 만 2세 때부터 받았습니다. 수강 학생중에서도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민을 온 뒤 얼마 후에는캐나다 영재학교에 발탁되었으며, 좀더 강한 도전을 하도록 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고교인
UTS(University of Toronto Schools)에 입학시켰습니다.
아이는 하버드에서 의대 진학을 위한 코스 가운데 하나인 화학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 전공을 마친 후 하버드나 죤슨 홉킨스 의대에 진학해 의료 분야에서 가장 어렵다고 알려진
뇌나 심장 전문의가 되려고 합니다.
국제 학생의 신분으로 의대 진학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가진 재능이나
열심히 노력하는 스타일로 보아 크게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의대에 진학했을 때 부모로서 비싼 학비를 6년 동안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걱정입니다.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의대에 진학해서는
장학금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합니다.
하버드 4년 장학생 입학에 따른 큰 기쁨 뒤에는 이같은 걱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출처 : http://bomnamoo0420.tistory.com/entry/하바드-4년-장학생-남매를-이렇게-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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